고영찬 개인전 [엑스 시추] | Ko Young Chan Solo Exhibition [Ex-Situ]

고영찬 개인전 [엑스 시추] | Ko Young Chan Solo Exhibition [Ex-Situ]

2022.4.30 – 5.29

관람시간: 12:00-19:00(월요일 휴관)
협력기획: 임보람
포스터 디자인: 손승효

주최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Opening Hours: 12:00-19:00(Closed on Mondays)
Curated by Boram Lim
Poster Design by Seunghyo Son

Organized by Plan B project space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

*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년도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을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전시 서문

글 임보람(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디렉터)

고영찬 작가의 ‘장소’는 살아있다. 마치 ‘장소’를 ‘인물’인 것처럼,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장소란 묵묵히 사건을 목도하고, 흔적을 품어 증거를 남기는 곳이며, 그 장소를 살아간 사람들의 기억이 몇 겁(劫)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켜켜이 쌓여,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서사시를 읊어줄 것만 같은 대상이다.

‘독학 수사관’을 자청하는 작가는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으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위시한 작업 방식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그는 사건과 장소의 기록에 충실한 역사가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어느 장소’를 찾아내어 지역적이고 사적인 소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숨겨지고 잊혀진 이야기를 탐색하고 직조하는 탐험가이자 이야기꾼이다. 어쩌면 이는 <태양 없이>(2018)나 <DORORI>(2022)와 같은 작품들의 근저(根底)에 자리한 다큐멘터리즘의 ‘역설’ 안에서, 주된 사실 사이에 가려지거나 잊힌,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고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주변화된 사실들 혹은 배제된 사실들을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냈던, 그 작업 태도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일상사 안에서 이야기를 발굴하고 취재와 조사를 통해 서사를 구축하는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으로 시작된 이 두 작품은 실상 작가의 손에서 ‘재현’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디 주인공이어야 했을 재현의 대상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진실 혹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애매하게 흐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고영찬 작가의 이야기는 재현하는 대상보다 오히려 재현을 수행하는 창작자의 관점에 충실한 이야기가 된다.

단채널 영상 작품 <태양 없이>와 아카이브 사진을 다루는 설치 작품 <티끌 모아>(2022)의 배경이 된 빌라흐도넬(Villardonnel)은 작가가 프랑스에 체류할 당시 관심을 갖게 된 마을로, 과거 어느 시절에는 세기의 금광으로 불릴 만큼 번성했다가 지금은 폐광이 되어 접근이 금지된 살시니유(Salsigne) 광산 부근에 위치한 곳이다. 작가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과거 광산의 시간을 탐험한다. 인물을 통해 전달되는 증언의 이면에는 반드시 과거의 시간이 존재하고, 그 과거의 시간을 품은 장소는 서사시를 들려준다. ‘태양이 사라진 마을’이라는 가상의 상황 설정을 두고, <태양 없이>는 폐광이 결정된 후 광산 점거를 위해 8일간 스스로 갱도 안으로 문을 닫고 들어가 지냈던 광부들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면서, 폐광이라는 중심 사건보다는 오히려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카드놀이를 하며 보냈던 광부들의 시간을 서사의 축으로 삼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연출된 빛 한줄기를 소환하여 어린아이들의 이마로 옮겨와, 마치 유전자처럼 과거로부터 현재로 전승된 ‘빛’의 은유를 심어놓는다. 이로써 작가에게 어두컴컴한 광산의 갱도라는 장소는, 어둠으로부터 밝은 방을 보아야 한다는, 빛을 기억하는 장치인 카메라의 원초적 기능과 원리로 비유되었다.

“Là, je ne peux vraiment rien faire!!!”

(이 사진은 정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네요!!!)

빌라흐도넬의 이야기와 시간을 수집하던 작가는 이 작은 마을의 관공서(Mairie de Villardonnel)에서 보관하고 있던 아카이브 사진을 들여다보던 중 어느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이런 문구를 발견한다. 얼핏 뜬금없어 보이는 이 문장은 <티끌 모아>를 이해하는 시발점이다. 마을의 모습을 기록한 자료로서 아카이브 사진은 ‘디지털 보정’ 전과 후의 사진이 각기 쌍으로 묶여 함께 보관되어 있었는데, 원본의 사진에는 당시의 카메라 기술(아날로그 필름 카메라였을 것이다)이 가진 거친 속성이 드러나고, 또 인화된 사진을 오랜 시간 보관하면서 여기저기 긁히고 얼룩이 지거나 먼지와 같은 이물질이 달라붙은 흔적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인화된 사진을 디지털화(스캔)하여 저장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흔적들이 결합된 새로운 디지털 원본과 함께 이러한 거친 이미지가 선명하게 손질된 아카이브 사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라이트박스와 슬라이드 필름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 <티끌 모아>에서 작가는 이렇게 ‘원본’으로부터 사라져버린, 얼룩이나 긁힌 자국, 과거 사진 기술의 흔적들을 광산 마을의 역사와 같이 바라본다. 사라지고 배제된 어떤 것,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현재에는 없는 것, 기억과 기록에는 남아있으나 지워진 것, 지워져야 했던 것, 작가에게 그것들은 광산의 갱도에 가득했던 수많은 가루와 먼지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알갱이들’과 같은 질의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작가는 ‘알갱이들’로 은유된 누군가와 무엇, 그것들을 다시 관찰하고 되살리는 작업을 통해 현재의 시간으로 과거 광산 마을의 시간을 불러온다. 이렇게 작가가 이 ‘알갱이들’을 소환하기 위해 ‘번호’를 매기고 호명하는 작업은 아카이브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반영한다. 작가는 아카이브를 변형하는 과정에서 날 것이었던 최초의 기록이 가진 원질서(original order)로부터 삭제된 쓸모없는 것(으로 합의/규정한 것)들에 다가가려고 한다. 데리다가 아카이브 열병을 설명하기 위해 서술했듯이, ‘우리는 아카이브를 통해 이미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을 갈망하고 있지만 실제로 아카이브는 그 부재의 흔적만을 보존할 뿐 과거의 기억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알갱이들은 우연히 발생하였지만, 의도적으로 사라졌다.

사라지고 배제된 서사를 찾는 작가의 탐구심은 도난당한 뒤 반환된 민속문화재 ‘짐대하나씨’에 관한 사건을 다룬 최근작 <DORORI>에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DORORI>의 서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동중리 마을의 민속 신앙으로부터 미스터리한 민속문화재 실종 사건을 경유하여, 진술과 증언을 의심하게 되는 정황과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을 은유하면서 사건의 단서들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추적을 하는 것은 작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관객이다. 왜냐하면, 서사 안에서 사건의 실마리는 참과 거짓의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상태이고, 관객은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그 알 수 없는 실마리들을 주워 담아야 하며, 게다가 사건에 대해 진술을 하는 자들은 의심스럽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영상의 시퀀스를 구성하는 불확실한 이미지들은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진실에 얽힌 불신과 그에 대한 욕망과 같은 것이다. 작가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들을 수집하면서 진실과 거짓을 유추하는 것보다 역으로 진술자들을 의심하게 되는 정황을 경험하였고, 이러한 주체와 진실 사이의 윤리적 관계를 의심하여, 목격자와 전달자, 그리고 의심하는 자들 사이에서 실체적 진실의 허구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증인, 즉 진술하는 자가 아닌 목격자로서의 장소를 사건의 대상으로 치환하여, 그 안에서 증거물들을 탐색하기로 하고 증인에 대한 의심을 역으로 활용한 서사를 새롭게 구축하여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을 연출한다.

작가가 전시의 제목으로서 ‘엑스 시추’(Ex-Situ)를 차용한 것은 어쩌면 장소의 이동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엑스 시추는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본디 자리에서’라는 의미의 ‘인 시추(In-Situ)’와 반대로 ‘off site’, 즉 실험실 밖에서 수행한 실험을 의미한다. 작가는 엑스 시추가 또 다른 어딘가로의 ‘이동’이 필수적인 상황, 그 과정에서 ‘변질’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고 여긴다. 그의 작업 무대가 <태양 없이>와 <티끌 모아>의 배경이 된 빌라흐도넬에서 <DORORI>의 배경이 된 전라북도 부안 일대로 이동한 것도 절묘하게 그가 실험의 토양을 옮기듯 자신의 터전을 ‘이동’시키면서 외부적 변수의 작용과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엑스 시추와 같은 실험으로 간주하고, 변화한 토양에서 다시금 지난 작업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개념을 찾아가려고 한다.

작가소개

고영찬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방법론으로 삼아 ‘제멋대로인 장소들을 재주술화’*하는데 관심을 두고 특정 장소에 관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독학수사관으로서 장소를 탐사하고 증인들을 탐문하며 주변화된, 잊혀진, 지역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발굴해 나간다. 장소의 기억, 개인의 기억, 그곳과 관련된 사건, 사고, 풍경, 장소성이 작업의 축을 이룬다. 《Nuit blanche》(Les grands voisins, Paris, 2019), 《24èmes Rencontres Internationales Traverse》(Les Abattoirs, Toulouse, 2021), 《기술적 수치》(을지로OF, 서울, 2022) 등에 참여했으며, <태양 없이>(2018)가 제14회 부산국제비디오아트페스티벌 경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밖에도 이케눙크(ikénunk) 콜렉티브의 멤버로도 활동하며 예술과 생존이 기묘하게 결합된 경계적 예술 형식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Introduction

Written by Boram Lim

Ko Young Chan’s ‘place’ is alive. He seems to regard a place as if it is a living organism. For him, a place is an entity that silently witnesses events, gathers traces and leaves behind evidence. A place accumulates memories of those who lived there throughout the ages and then recites them, in a hushed tone, as if they were epic poems.

The artist, Ko, calls himself a ‘self-taught investigator’. He uses a documentary approach and is especially interested in the ‘history from below’. However, rather than being historian, faithful to the records of events and places, he is a storyteller who weaves forgotten stories from the discovery of an interesting ‘place’ and the excavation of local and private materials. This work attitude becomes clear in the works of <SIM SOLEL> (2018) and <DORORI> (2022), where marginalized or excluded facts which might seem insignificant and useless at first, become the central narrative. In contrast to the main facts, this emphasizes the paradox of documentary which forms the basis of the underlying works. They use the documentary’s methodology of discovering stories in everyday life and by constructing narratives through collecting and investigation, the line between fiction and non-fiction is blurred by the artist. Thus trivial personal stories become the new protagonists rather than the actual object of representation that is supposed to be the main character. In other words, the story of the artist, Ko, becomes faithful to the perspective of the artist who is carrying out the representation rather than the object being represented.

Villardonnel, a village he became fascinated with during his stay in France, forms the background of the single channel video <SIM SOLEL> and the installation <Gathering Dust> (2022), which is based on existing archive photos. It is located near the Salsigne mine, which prospered enough back then to be called the gold mine of the century, but has now closed down and is forbidden to enter. The artist explores the time of the mines through the testimonies of people in the village. Behind these testimonies lies the past and the place. The place embraces the past by reciting us an epic poem. The imaginary setting of the ‘village where the sun has disappeared’, <SIM SOLEL> brings to life the time when the miners occupied the mine for 8 days after the decision was made to close it down. The central event of the abandoned mine is set aside, and the miners’ time spent playing accordions and card games is shown as the main axis of the narrative. And then, the ray of light fabricated in the pitch-darkness is transferred to the foreheads of children, and the metaphor of ‘light’ passed down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is planted like a gene. In this way, for the artist, the gallery of a dark mine shaft is comparable to the original function and principle of a camera, a device that stores light, which requires seeing a bright room from the darkness.

“La je ne peux vraiment rien faire!!!”

(I really can’t figure out what to do with this picture!!!)

Ko found this phrase on one of the photos while looking through the archives kept at the town hall(Mairie de Villardonnel) of this small village. At first, it seemed insignificant, but then becomes the starting point to understand <Gathering Dust>. As a document that recorded the appearance of the village, the archive photos were stored in two versions: before and after ‘digital correction’. The original photograph(made with an analog film camera) revealed the harsh nature of the camera technology of the past time. It contained scratches, stains, and debris caused by the test of time. In order to preserve the value of these old photographs, they were enhanced and restored through digital technology. The new digital sources were then combined with the rough images carrying the traces of time. In <Gathering Dust>, an installation work composed of a light box and slide film, the artist looked at the stains, scratches, and traces of the past photographic technology that were removed from the ‘original copy’ as if it was the history of the mining town. Here is something that had disappeared and been excluded, something that existed in the past but not in the present, and something that remained in memory and official records but had to be erased. For the artist, they were of the same texture as the numerous dust particles that filled up the mine shaft. This way, the artist brings back the past time of the mining town to the present time by re-observing and reviving someone and something while he depicted them as ‘little particles’. The process of ‘numbering’ summons back these ‘particles’ while also reflecting his attitude toward the archive. By modifying the archive, the artist tries to approach the useless things (things agreed upon/defined as) that have been deleted from the original order of the initial records. As Jacques Derrida wrote to explain the archive fever, ‘we are longing for what has already been lost and missed through archives, but in reality, archives only preserve traces of their absence and cannot be memories of the past.’ The particles arose accidentally, but deliberately disappeared.

The artist’s quest for a lost and excluded narrative becomes even more compelling in his latest work <DORORI>, dealing with the case of the folk cultural asset called Jimdaehanassi, which was first stolen and then returned. In the case of the mysterious disappearance of cultural assets, the narrative of <DORORI> searches for clues as it depicts the folk religion of Dongjung village, Buan-gun, Jeollabuk-do. It becomes a metaphor for the circumstances in which statements and testimonies are conducted while the subject is not clear. However, it is not only the artist who is chasing the clues here, but also the audience. Because it cannot be determined whether the clues in the narrative are true or false, the audience must pick up the unknown clues to understand the incident. Moreover, those who make the statements are suspicious and doubtful. The disconnected images that make up the video sequence are the reality in which the truth cannot be found. Doubting the truth and a desire to know the truth gradually intertwine. While collecting the stories of the witnesses, the artist was confronted with doubt instead of discovering what was true or false. He even started to doubt the moral relationship between these subjects and the truth. From the testimonies of the witnesses, the messenger and the skeptics he eventually discovered the falsehoods in the substantive truth. Thus, the witnesses are replaced by the artist with the place of the event itself becoming the witness. As he looks for evidence within the place, he creates an ambiguous situation by constructing a new narrative that uses the suspicion of the witness in reverse.

‘Ex-Situ’, the title of the exhibition, might have something to do with the movement of places. Ex-situ is a laboratory term. As opposed to ‘in-situ’, which means ‘on the original place’, it means ‘off site’, away from the natural location, referring to an experiment conducted outside the laboratory. The artist believes that ex-situ presupposes the possibility of ‘transformation’ in a situation where ‘moving’ to another place is essential. External factors contributed to the fact that the artist moved the background of his work from Villardonnel, the setting for <SIM SOLEL> and <Gathering Dust>, to the area around Buan, Jeollabuk-do, which became the setting for <DORORI>. Perhaps similar to moving the soil in the case of laboratory experiments. The artist regards this solo exhibition as an experiment ex-situ, reflecting on his past work while standing on changed soil, and distilling a new concept from it.

*Alastair Bonnett의  「장소의 재발견」에서 인용

VIDEO PARTY KYOTO in Seoul

VIDEO PARTY KYOTO in Seoul
2022년 3월 26일(토)-27일(일) / 4월 2일(토)-3일(일)
Opening Hours 12:00 – 17:00 / weekend only
Plan B project space (서울 서대문구 가좌로 108-8번지 B1)

VP Seoul 참여작가
김유진, 나이토 히요리, 난조 사호, 마유미 리카, 사토 유카, 야마나카 치히로, 오오우치 리에코, 오카마츠 토모키, 오가와 타카유키, 우메오카 유이호, 유라 야스토, 하야시 케이타, 히가시 료타

VP Seoul Participating Artists
Yujin Kim, Hiyori Naito, Saho Nanjo, Rika Mayumi, Yuka Sato, Chihiro Yamanaka, Rieko Ouchi, Tomoki Okamatsu, Takayuki Ogawa, Yüiho Umeoka, Yasuto Yura, Keita Hayashi, Ryota Higashi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비정규/비정기 상영회 해적극장의 2022년 미디어위크엔드 봄편에서는 일본 교토의 루멘갤러리와의 협업으로 <비디오 파티 / VP Seoul>를 개최합니다.

교토의 실험영상, 독립영화 씬을 중심으로 연례행사로 열리는 <비디오파티 / VIDEO PARTY>는 2013년을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9차례의 상영회를 개최하면서 교토에서의 상영 외에도 상하이, 부산, 삿포로 등 타 지역을 순회하며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해왔습니다. 이번 <비디오파티 in 서울 / VP Seoul>은 비디오파티의 기획자이자 루멘갤러리의 운영자인 하야시 케이타 Keita Hayashi와 유라 야스토 Yasuto Yura가 그간의 비디오파티 상영작 중에서 선정한 단편영화 4편, 실험영상 2편, 애니메이션 7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루멘갤러리(Lumen gallery) 소개: 2015년 실험영화/영상작가 하야시 케이타, 유라 야스토, 사쿠라이 아츠시 3인에 의해 설립된 영상 전문 갤러리입니다. 다양한 실험 영화 스크리닝 뿐만 아니라 영화와 현대 미술의 장르 구분 없이 실험적인 설치, 퍼포먼스, 전시 등을 운영해 왔습니다. 루멘갤러리는 7년간의 운영을 마무리하고 2022년 4월 폐관이 결정되었고, 그간의 활동을 기념하면서도 서울과의 교류를 지속하기 위하여 이번 VP Seoul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루멘갤러리는 기억과 기록으로 남지만 비디오파티와 기획자들의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출품작 리스트

그래서, 낯설게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기획전
<그래서, 낯설게>
2021.9.24(금) – 10.17(일)
문세연, 전지인, 정철규
주최/주관: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오픈시간: 11: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글 임보람(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디렉터/독립큐레이터)

“우리의 삶보다도 더 우리 것인 것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고, 느지막이 존재한다, 그리고 느지막이 우리의 것이다, 바로 우리이다.”1) 존재의 본질은 실존이다.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선택하고 존재에 물음을 던짐으로써, 우리는 ‘지금’(now), ‘여기서’(here), 살아가는 현존재(dasein)가 된다. 현존재로서 인간은 각자의 삶의 형상으로 살아가고, 그 삶들은 자신의 고유한 실존이 타인과 맺는 관계를 이해한다. 너와 나, 타인과 타인이 맺는 관계가 있어야만 비로소 존재가 현실이 되는, 네가 있어야 내가 현실이 되는, 그러한 세계에 살면서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도 특정한 법칙이 무한하게 반복되는 프랙탈 도형처럼 반복된 형상으로 얽힌 관계의 그물망 속 어딘가의 지점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를, 타자의 서사를 읽는다.

‘그래서 낯설게’는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1935)의 싯구 한 부분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수많은 이명(異名)을 가지고 살았던 그는 이명들이 가진 각기 다른 삶과 정체성에 대하여 개인적 서사를 구축하고 그 서사에 숨을 불어 넣었다. 타인에게는 낯설고 얼핏 이 사회의 시의적 관심사에서 배제된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개인적 서사들은 자기 생의 체계 안에서만큼은 찬란히 빛나는 틈과 순간을 가지기도, 공허한 불안과 존재의 망각을 극복하려 애쓰기도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낯선 타자적 위로를 갈망하고, 또 스스로 타자를 위한 낯선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낯선 위로와 망각의 틈을 비집고 나온 서사의 목소리들은 더이상 개인의 서사가 아닌 이 사회를 구축해 온 우리의 서사가 된다.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전시에서, 그래서 낯설게,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지도 모를 타자의 서사를, 어떤 순간을, 내밀한 기억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정철규 작가는 지난 2020년부터 ‘전달 인터뷰’라는 기제하에 <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2020) 연작을 시작했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작가에게 들려주었고,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마치 ‘맞춤옷 재단사’처럼 각각의 이야기로부터 이미지를 짓고 재단했다. 전체의 이야기는 감춰져 있을뿐더러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로부터 한 조각의 글과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한 조각의 이미지를 건네받았다. 작가는 충실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신저’였으면서도, 동시에 충실히 이야기를 감추고 지워진 이름들의 그 은밀한 서사를 스스로 품은 ‘대나무숲’이었다. 이렇게 존재들의 그물망 어딘가를 차지할 개인적 서사들이 차곡차곡 쌓였을 즈음, 작가는 <브라더 양복점>(2021)을 열었다. 지난 5월 <브라더 양복점: 1호점>(2021)으로 시작된 이 연작 프로젝트는 이번 전시에서 <브라더 양복점: 팝업스토어>(2021)로 다시 문을 연다. <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가 44명의 특정 인물들(물론 호명되길 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의 서사였다면 <브라더 양복점>은 불특정한 인물들의 서사를 접한다. 양복점에 찾아온 이 ‘불특정’한 서사들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의 긴장된 상태에서 작가와 오목을 두기 시작하고, 이 오목을 두는 시간은 곧 은밀한 서사가 문을 여는 순간이 된다. ‘오목 두기’는 이미 정확한 수치로 그려진 그리드(틀) 위에 재단사(작가)와 고객(관객)이 예측할 수 없는 이미지 혹은 의도할 수 없는 형상을 생성하는 행위다. 오목을 두며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면, 양복천과 실을 고르거나(1호점), 마주 앉아 바느질을 하며(팝업스토어) 이야기를 지속하고, 작가는 비로소 마주 앉은 타인의 개인적 서사에 재량껏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재단사와 마주한 고객이 오목을 두고, 대화를 나누고, 양복천과 실을 고르면서,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 특정한 예술적 이미지의 ‘창조’에 관여함으로써 <브라더 양복점>은 수행(遂行, performance)적 관습을 강화했다. 그리고 이 불특정한 다수의 서사들을 수집한 작가는 다시 한 땀 한 땀, ‘바느질’의 수행(修行, practice)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 두 가지 수행(遂行, 修行)적 행위는 타인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서사의 주인공보다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 자신을 중심에 두고자 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떠세요? 라는 물음을 던져보고자 한다”2)는 작업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수행을 거쳐 생성될 이미지는 나의 이야기이며 너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스스로를 ‘마음 맞춤 재단사’라고 칭한 작가가, 개인의 서사에 개입하고 관계 맺는 수행(遂行)의 과정을 수행(修行)하듯 실천하면서, 존재들의 그물망에서 부유하는 우리를 타자적 위로가 수반된 그 어딘가의 지점으로 이끌 부표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익명의 개인적 서사에 접근하는 방식은 문세연 작가의 작업에서 이와 달리 좀 더 보편적인 범주로 펼쳐진다. <이름보다 짧은>(2021)의 10개의 캔버스 위에 전사된 이름들은 작가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여성 이름들로 선정한 것이다. 작가는 20대 여성의 자살률 증가라는 사회적 현실을 마주하고, 익명인 그들의 사연을 전유할 ‘이름’을 찾는다. 각기 다른 생을 얻고,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며,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다, 각기 다른 연유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들에게 ‘가장 흔한’ ‘20대 여성’의 이름들을 나열해주고, 장수의 기원으로서 명주실을 바느질한다. 명주실의 의미는 돌잡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첫 한 해를 무사히 보내면 돌잔치를 여는데, 돌잔치에서는 ‘돌잡이’를 통해 여러 가지 축복과 기원의 의미를 담는 의식을 치른다. 책이나 연필을 잡으면 학문에 정진할 것으로, 쌀이나 돈을 잡으면 부자가 될 것으로 기원하는 등 다양한 돌잡이 물품들 가운데에서도 명주실(실타래)은 ‘장수’를 기원한다. 작가는, ‘길고 튼튼한 명주실 같은 삶을 살아야 했을’ 그들이 각자의 숨겨진 사연이나 삶의 어떤 ‘결핍’에 의해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는 현실을 ‘이름보다 짧게’ 바느질된 명주실에 전의(轉義)한다. <축원들>(2021)은 마치 제단의 형상처럼 나열된 짧고 긴 ‘소원성취 양초’들과 함께 여러 개의 문장이 전사된 3개의 캔버스로 구성된다. 이 문장들은 수많은 ‘이름’들의 뜻풀이로서 태어난 아이에게 지어주는 이름들에는 각기 뜻이 있고, 그 뜻 속에는 부모의 축원과 바람, 기원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생(生)을 얻는 순간 붙여지는 ‘이름’과 생을 살아가는 동안 ‘기원’이 될 이름의 의미에 대하여, 생의 유한한 시간, 타 들어가며 축적되는 그 비가시적 시간을 함축하는 양초가 종교 제단과 같은 형상으로 세워지면서, 녹아내리는 촛농이 축적된 시간과 함께 축적된 염원의 시간을 의미하고, 아직 ‘남아있는’ 생이 그 염원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인간의 생은 유한하며,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 생(生)을 얻고, 젊음, 늙음의 시간을 보내면서 사(死)를 향해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생과 사를 동시에 얻는 일이다. 젊음의 시간은 다가올 미지의 시간 때문에 불안하고, 늙음의 시간은 살아온 시간의 축적만큼이나 고독하다. 젊음과 늙음, 인간의 ‘생애주기’는 개인의 서사 위에서 각기 다른 형태와 불규칙한 길이로 재편되겠지만, 여전히 생은 유한하다. 전지인 작가는 세 개의 작품을 통해 개인의 생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생애주기의 ‘어떤 시간’을 언급한다. 전시장 입구 전면에 설치된 <White Shadow>(2020)의 이미지에는 익명의 신체 위에 흰 머리카락 한 가닥이 걸려있다. 정면에서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쉽게 연령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각적 정보들을 거두고 피부와 머리카락과 같이 제한된 소수의 기호만으로 관객에게 접근함으로써 ‘젊음’으로 치환되는 건강한 신체와 그에 상반되는 기표로서 ‘흰 머리카락’이 대비되며 신체적으로 가장 빛나는 시기와 사회적 존중(혹은 대우)의 시기와의 대조와 결합이 기의로 작동한다. 젊은 신체와 흰 머리카락은 가시적 기표이며 관습과 보편의 기호다. 작가는 이 두 가지의 기표를 결합함으로써 관습적 시선을 넘어서서 존중받고 싶은 개인을 은유하고자 했다. 중층적 기표로서 결합된 이미지는 ‘개인의 서사에 따라 재편된 각기 다른 생애주기’로서 다시 두 개의 다른 시간을 결합한 기호가 된다. 이 두 개의 다른 시간은 무빙이미지에서 더욱 결속력을 가질 수 있는데, <White Shadow: Talisman>(2021)에서 흰 머리카락의 시간은 젊은 신체의 시간에 달라붙어 움직이는 ‘부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White Shadow>가 전시장 외부에서 벽을 향해 등을 돌린 신체 이미지의 스케일과 마술적 시각성으로 관객을 이끌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 관객은 <White Shadow: Talisman>에서 움직이는 시간의 기호를 접하게 됨으로써 다시 기표의 시각적 변환을 경험한다. 전지인의 또 다른 작품 <Period>(2020)는 저마다 개인적 경험과 서사 속에 존재하는 조건 없는 환대의 기간, 어떤 특별한 ‘유예기간’으로 관객을 소환한다. 두 개의 채널에 등장하는 퍼포머들은 카메라 너머의 특정한 대상을 나름대로 상상하고 그 대상을 향한 반응-표정과 언어-을 대본 없이 연기한다. 이들이 상상하는 대상이란 ‘어리거나 연약한’ 존재이며 이들의 반응이란 ‘환대’와 같다. 퍼포머들의 ‘환대’는 ‘유예 기간’을 위한 소격효과 장치다. 생애주기에서 생 이후의 일정 시기를 지나 사회적으로 ‘어른’이 된 퍼포머들(이자 우리들) 역시 과거 어느 시기에는 ‘어리거나 연약하기’ 때문에 어떤 사회적 기준이나 조건들-성별, 나이, 직업, 학력과 같은-에 무관하게 순수한 ‘환대’를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관습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시선이 향하는 그 친숙하고 익숙한 환대의 대상은 드러나지 않으며, 환대의 장치는 개인의 서사 속에 존재하는 ‘유예 기간’의 의미를 새롭게 자각하도록 유도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테의 수기』(1910)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죽음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아이들이나. 아이를 가진 채 서 있는 여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서글프도록 아름다웠던가. 가녀린 두 손을 자기도 모르게 살짝 올려놓은 그들의 부푼 몸속에는 두 개의 열매가 들어 있었으니, 하나는 아이이고 또 하나는 죽음이다.’3) 인간이 생(生)과 동시에 사(死)를 얻을 때, 생과 사의 서사가 쓰여질 때, 유한한 생이 불안을 마주하여 불멸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너와 내가 타자가 되고 타자와 타자가 현존재의 위상을 얻을 때, 지금 여기 우리는 두 개의 열매를 이야기하며 서사를 쓰고 읽어나간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건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4)

1) <병보다 지독한 병이 있다>, 1935.11.19., 페르난두 페소아
2) 정철규 작가노트에서 발췌
3) 원문을 부분 발췌, 편집하여 인용하였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직접 보거나 들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다 똑같았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죽음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을 갑옷 안쪽에 마치 포로처럼 지니고 다닌 남자들이나, 늙어서 자그마해졌다가 나중에 가서는 마치 무대에 올라온 것처럼 어마어마한 침상에서 온 가족과 하인들과 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중하고도 품격 있게 죽어간 여자들이나. 그래, 아이들, 아주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아이들의 죽음을 죽지 않았고, 온 정신을 다해서 이미 자신들이 가꾼 죽음과 더 살았으면 이루어냈을 죽음을 죽었다. 아이를 가진 채 서 있는 여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서글프도록 아름다웠던가. 가녀린 두 손을 자기도 모르게 살짝 올려놓은 그들의 부푼 몸속에는 두 개의 열매가 들어 있었으니, 하나는 아이이고 또 하나는 죽음이다. 큼직해진 얼굴에 번지는 진한, 영양이 듬뿍 들어 있는 듯한 미소는 두 개의 열매가 자라고 있음을 가끔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4)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1930.8.24., 페르난두 페소아

전지인_White Shadow;Talisman_ Moving image_ 2021
전지인_Period_2채널 영상_ 4K HD 변환_ 컬러_ 사운드_10분40초_2020
정철규_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_가만히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_45x38cm_옥스포드원단위에 손바느질 실드로잉, 락카_2020
문세연_이름보다 짧은 명주(수빈,소연,지연,민정,지수)_캔버스에 전사,명주실_50x50cm_2021

작가 소개

문세연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현상에 관심을 두고 여성의 이름, 여성의 생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탐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별에 따른 생의 기원에 관심이 있으며 아이가 태어날 때 받는 축원 대하여 작업하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 미술 콜렉티브 불화자 콜렉티브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참여한 전시로는 <서른이 되지 못한 너에게>(2021, 별관), <온실열람>(2021, 공간 일리), <진짜,진짜,진짜>(2020, 가삼로지을), (2020,, Marlyand Art Place, 볼티모어, 미국), <실패전>(2020,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등이 있다.

전지인은 물리적 또는 추상적인 공간을 근간으로 그 곳에 내재한 문화적 쟁점들에 파고든다. 현재의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문화적 관습과 위계질서가 갖는 특성을 펼쳐보고 사고의 깊이를 확장해가는 과정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며, 미술의 언어, 영상, 텍스트, 설치를 매체로 작업하고 있다. 최근 전시로는 (2020,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전기우주> (2019, 문화역서울284), <아무튼, 젊음>(2019, 스페이스씨 코리아나 미술관), <통합 불가능한 이질적 개체들>(2018, 경기창작센터), <슬프고도 아름다운 불안의 서(書)>(2018, 아마도 예술공간), (2016, LUMEN Gallery&HRD Find Art, 교토, 일본)등이 있다.

정철규는 사회 속에서 가면을 쓰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사회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감춰야만했던 개인의 서사를 시적 이미지로 재현한다. 남성복 원단을 비롯한 다양한 재질의 원단위에 실로 수를 놓아 수수께끼 같은 형상들을 만들어내면서 숨겨진 것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보여줌으로써 가부장적인 경계로부터 벗어난 타자들의 떠도는 서사를 복원하고 발굴해 다시 쓰기를 하고 있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2010년 송은아트큐브 를 시작으로 <그곳에서 그대들은>(2014, 자인제노 갤러리), <도망가는 밤>(2016,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밤 새 운다>(2017, 프로젝트 스페이스 우민), <귀를 보고 하는 말》>(2018, B-CUT갤러리), <없는, 오늘 – 매일같이 밀고 당깁니다>(2018, 단원미술관), <브라더 양복점>(2021,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등이 있다. 2018-2019년 경기창작센터 창작레지던시와 2019-2021년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 2021년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였다.

곽동경 개인전 [틸틸미틸]

곽동경 개인전 <틸틸미틸 Tyltyl Mytyl>
2021.5.4 – 5.23
협력기획: AS(김현주, 박미연, 양정애)
주관: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포스터 디자인: 박정은
오픈시간: 11: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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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곽동경(b.1988) 작가는 상명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상문화학을 전공했다. 바깥의 풍경과 내면의 풍경이 겹치는 지점을 탐사하며 사진으로는 현실을 붙잡아 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얕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는 선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역설적인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협력기획 AS 소개
<<AS>>는 2020년 서울문화재단 RE:SEARCH의 일환으로 수행한 <<예술한담>>(기획팀: 김현주, 박미연, 양정애, 곽동경)의 스핀오프로, 과정에서 새롭게 도출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AS>>는 2020년 <<예술한담>>을 회차별 종료로 간주하지 않고 함께 자리를 꾸려갔던 작가들과의 다음 단계 설정이며, 심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개입을 매개하는 자리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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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longing), 진행형의 첫 매듭

글 김현주(전시기획자, 미술평론가)

토악질하듯 살아가는, 그 신 내를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몹시 부럽다. 그래서 사진을 “욱여넣고…게워내었다”1)고 말하는 곽동경에게 동류의식을 느낀다. 몇 년 전 그에게 사진을 보고 싶다 어르고 달랬더니 그는 자정을 넘기고도 두어 시간을 더 눌러 채우고야 보여주면서도 채 보기도 전에 삽시간에 거둬들였다. 그때 본 작업이 〈510kilometer〉 연작이다. 사대강 사업이 한창인 낙동강 줄기 따라 차도 없이 걸어 찍어 나간 사진이다. 작년에는 내년에도 개인전을 못한다면 이제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구슬려서 지난 사진들을 들춰내게 했다.2) 첫 전시인데 초췌해 보이는 그가, 바로 나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번 전시 제목 《틸틸미틸》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희곡 『파랑새(L’Oiseau Bleu)』의 남매 틸틸(Tyltyl)과 미틸(Mytyl)의 이름에서 따왔다. “뒤집어진 공룡, 베란다가 훨씬 따뜻하다, 유령매점, 티오황산나트륨”3) 등 아무 말을 쏟아내다가 “틸틸미틸”에 닿았다. 굳게 믿었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라는 이름이 틸틸과 미틸이었음4)을 알았을 때 파사삭 금 간 유년 추억 하나 때문에, 그리고 파랑새를 찾아 떠난 모험에서 결국 그 새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해사한 교훈을 더 이상 믿지 않는 허망함을 눌러 이 제목에 담았다. “팔다리 잘린 채로 무엇을 말한다고.” 그래서 그는 말하기 대신 사진을 찍는다. “이번 전시의 컨셉은 무엇일까요?” 내게 묻길래 그걸 왜 내게 묻냐는 말 대신 ‘창고대방출’이라 얘기했다. 스스로 넝마주이라 말하지만 그가 호더(hoarder)이길 바라지 않는다. 십여 년에 걸친 수집과 축적에 물길을 터줘야 다음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들어찼던 사진들 중 크게 네 가지 범주를 추려 선보인다. 전시장 동선상에서는 근작에서 전작으로인데 가끔 음악이나 영상을 앞뒤로 건너뛸 때 “앞으로 돌려봐, 뒤로 돌려봐”에서 소통 오류가 나듯 앞에서 뒤로이든 뒤에서 앞으로든 모두 어제까지의 곽동경이다. 오늘부터의 곽동경은 이제 사진을 보고 또 이 글을 읽은 이들에게 각기 달리 발아할 터이다.

전시장 도입부에 자리한 〈날숨〉 연작은 처리상으로는 간결하다. 렌즈 앞에 숨을 불어넣어 필터 처리를 해서 찍은 바다 사진이다. 올해 초 부산 영도에 대한 리서치에 함께했고 《전승의 영도(Degree Zero of Transmission)》5)라는 제목을 단서로만 공유한 채 나는 글을, 그는 사진을 찍어 패치워크했다. 그곳을 혹은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가 공통의 숙제였는데 그는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만만치 않게 고민한 듯하다. 날것을 직시하기도 쉽지 않지만 날것의 모듬이 그 자체로 온전히 힘을 갖는 것도 아니다. 무수한 지표를 담는 것 대신 근현대 영도보다 더 오래되었을, 부둣가 바닷물이 그의 선택지였고 한낱 입김으로 소위 ‘뽀샵’ 처리를 했는데 그래서 이 바다가 한층 아름다워졌는가 하면 그럴 리가 없다. 그만이 포착해 낼 수 있는 세상이 있을 리 없고 치장, 분장 또한 곽동경스럽지 않다. 숨 쉬는 정도의 운신이 〈날숨〉 연작이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 숨이 차면 숨쉬기를 잊어야 힘이 덜 들 듯 각고의 서사가 없는 일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평안하다. 이 정도의 감각과 태도도 무리 없음을 그가 체화했으‘리라’6).

또 다른 연작인 〈나머지 정리〉가 무슨 의미인지 물었더니 그는 “피제수=몫×제수+나머지”를 상기시켰다. 나머지를 찍고 있지만 관심사는 “몫과 피제수를 찾고 있는 과정”이라고 한다. 갑자기 웬 산수 싶으면서도 그가 이과생이었음을, 정확히는 환경공학과 출신7)임이 떠올라서 더 묻지는 않았다. 고등 수학까지는 내겐 벅차고 산수에서 나머지 정리는 어떤 의미일까 내 방식대로 이해해 볼 때 몫이 말 그대로 오롯한 자리를 갖고, 제수도 능동의 기능을 가질 때 나머지는 늘 오도 가도 못한 채 남겨져 있다. 그래도 이 연산에서 나머지가 있어야 피제수를 지칭 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정리〉는 한 조각 퍼즐을 만지작거리는 모색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이 연작을 바라보면 사진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결락(缺落)에 관심이 간다. 열차 운행이 드문 민둥산역 인근 철도아파트는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는 민원이 빗발치지만 사진에 소란스러움은 담겨 있지 않다. 개발에 격앙된 목소리는 인간의 것일 뿐 철도아파트 그리고 바투 붙어 자라는 나무는 몫인 듯 나머지인 듯 세파와는 무관하다. 작가에게 이유와 서사를 묻는다면 답하겠지만 부러 묻기보다 내가 맞춰보고 싶어진다.

〈LAND landscape〉 연작은 쇠락해가는 전국의 놀이동산을 담고 있다. 가정사와 관련한 개인적인 기억에서 시작했다8)고 밝히고 있지만 이 연작은 과거 사연 이상의 동시성이 열화(劣化)된 상태 그대로 담겨 있다. 나는 옛것을 담은 많은 사진들이 과거에 고착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쏟아지는 많은 사진이 무너져내리는 것들에 천착하지만 불온함은 추억팔이, 사진팔이에 있지, 팔고자 하는 그 한 줌이 없어 보이는 사진 앞에서 레트로(retro)나 뉴트로(newtro) 같은 수사는 천박하기만 하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풍경 사진이라고 하면서도 자칫 풍경의 퍼스펙티브 이상으로 비칠 기교는 엄격하게 거둬들인다. 모두에게 그때 그곳은 유지되어 있지만 이제 찾지 않아 오는 생경함은 각자의 감상이지, “세상은 예상대로 평온”하다. 연작으로서 잠정적으로 마무리가 된 것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각기 다른 이유로 〈LAND landscape〉와 〈510kilometer〉를 거론한다. 그는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선이 그어진 것과 사실상 완결 당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LAND landscape〉는 자문자답을 배양하는 실험실에서 피사체를 풍경과 임의로 합성해 내보는 과정적 절차이지 않을까 추측하는데9) 이로 인해 나머지 과제는 〈나머지 정리〉에서 풀어나갈 연산이다.

그는 이제 “나머지 정리를 탐험해 가겠다”고 말한다. 발명가 아닌 탐험가로서 눈높이를 조정하고, 자신은 “중립적으로 포기된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하는 지점에 주목해 본다. 역할 설정과 장소 선점에서 일견 수세적이고 자기 확신을 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참 미덥다. 한없이 부풀어 오르지 않고 치기가 있다 하더라도 한 줌의 취기에서 만큼이라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의 어깨를 바람길만큼 가볍게 밀어준다. 래퍼에 버금가는 리듬감으로 밀고 당겨 엄정함 안에서도 그만의 힙합이 일기를. 그리고 언젠가 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보고 남긴 “행복하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이라는 글귀가 『파랑새』와 《틸틸미틸》과 공명하여 오늘 내일의 소임에 임하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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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글 중 큰따옴표 안의 단어나 문장은 대체로 곽동경의 말과 글에서 따왔다.
2)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 《예술한담》(기획팀: 박미연, 양정애, 김현주, 곽동경)을 통해 2020년 11월 22일에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 자리임을 밝힌다.
3) 제목으로 거론된 것들을 언젠가 곽동경의 다른 전시 제목으로 마주칠지도 모른다.
4) 한국에서 『파랑새』 는 일본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틸틸과 미틸은 일본어 번역본에서 음차한 치르치르(チルチル), 미치르(ミチル)로 알려져 있다.
5)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영도리서치(http://ydct.works/research_view.php?idx=11)에 수록되었다.
6) “―리라”는 곽동경의 일기의 마무리에 종종 등장하는, 그가 선호하는 어미다.
7) 곽동경은 사진을 전공하기 전에 환경공학과 출신의 이공대생이었다. 따라서 환경공학 전공과 사대강 사업 중 낙동강을 기록한 〈510 Kilometer〉 연작은 강한 인과 관계가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점은 환경공학에서 사진으로 왔다는, 전이에 있다. 그의 작업노트에는 “사진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넣는 것이라고 배웠다. 욱여넣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두 다리가 무거워지더라”고 적혀있다. 한편 대구를 이루는 쌍으로 “사진은 개인적인 메시지를 읊는 것이라고 배웠다. 게워내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두 팔이 무거워지더라”는 솔직한 심경도 작업노트에 담겨 있다.
8) 작가노트 상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작가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주 7일 근무하셨다. 일요일이면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는 아들의 울음 섞인 청에 아버지는 일요일에 놀이공원에 동행하셨고 그 대신 어머니가 아버지 대신 일요일 출근을 하시게 된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아갔던 어린이대공원이 그에겐 그 시절 디즈니랜드였고 원더랜드였으나 또한 아버지의 휴식과 어머니의 노동이 만든 네버랜드였던 것이다.
9) 우연한 일치이겠지만 오즈 야스지로가 《동경이야기》와 여타의 영화에서 그만의 다다미샷을 창출해 낸 것이 떠오른다. 오즈에게 일본 주택 실내가 가장 일본적 삶의 장소라면 〈LAND landscape〉의 놀이공원 또한 곽동경이 한국적 압축 경제 성장의 ‘일요일’을 ‘동경이야기’로 풀어낸 장소이지 않을까, 다소 비약 섞인 짐작에 닿는다.

곽동경, 510kilometer #1, 2021, 단채널 비디오, 흑백, 3분 40초
곽동경, LAND Landscape #7, 2021, pigment print, 40.6×50.8cm
곽동경, 나머지정리 #3, 2021, pigment print, 40.6×50.8cm

작가와의 대화

2020 아르코 공공예술 연구지원사업 콜로키움

2020 아르코 공공예술 연구지원사업 콜로키움
: 공공예술 관점에서 분석한 문화재생공간 연구

본 결과 발표회는 전국의 문화재생공간 11곳*을 선정, 리서치 트립 및 관계자 인터뷰,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평화문화진지, 문화비축기지, 경기상상캠퍼스, 부천아트벙커B39, 코스모40, 캠프그리브스, 탄약정비공장, 동부창고, 팔복예술공장, 부산시민공원, F1963

일시: 2021.2.27.토 오후 3시
장소: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서울시 서대문구 가좌로 108-8 B1

발표: 민병직 박미연 임보람 곽동경
질의: 김현주 양정애

주최: 바다를 채우는 통조림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망령들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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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들의 왕국]
신정균, 안건형, 옥정호, 이재욱

2020년 11월 17일(화) ~ 12월 13일(일)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 / 서울시 서대문구 가좌로 108-8번지 B1
오픈시간 11:00 ~ 18:00(월요일 휴관)

기획 임보람
포스터 디자인 원종규
트레일러 제작 박승원

설치 및 구조물 제작 염철호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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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들의 왕국

전시기획 / 글 임보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전쟁이 몇 번이고 되풀이될 테고 그 사이에 전쟁은 사람들에게 재난을 골고루 나누리라고. 나는 다만 재난의 분배를 일찍 받았을 뿐이라고.” 한국전쟁 직후, 1953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 어떤 이는 먼저 재난을 겪고, 어떤 이는 나중에 재난을 겪을 것이다. 어차피 인류사에서 재난은 몇 번이고 되풀이될 것이다. 그것은 이권 다툼에서 비롯된 전쟁의 모습을 할 수도 있고, 인류가 스스로 자초한 환경 위기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각종 잘못된 관습의 사회적 폐해로 잔류할 수도 있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념의 충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마르크스의 유령은 끊임없이 돌아올 것이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1993)’. 『마르크스의 유령들 (Specters of Marx)』에서 ‘specters’를 차용하였지만, 여기서는 이를 유령이 아닌 ‘망령’으로 통칭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망령(亡靈)과 유령(幽靈)은 유사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하면서도 ‘망령’의 사전적 의미에서는 ‘혐오스러운 과거의 잔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망령’과 ‘살아 있는 망령’이 모두 가능한 것은 과거의 잔재가 현존(現存)하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온 망령은 현재를 살아간다.

<망령들의 왕국>은 근대의 잔재와 탈근대의 이념이 공존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을 다룬다. 즉,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을 전제로 한 이 전시는 현대 사회를 배회하는 망령들에 관한 전시이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사회적 요소들이 같은 시대에 공존하는 현상으로,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특징이 공존하는 현재의 이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역사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복되는 사건들, 현상, 의식과 개념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유산이 공존하는 이 사회 속에 과거의 것이 단순히 유지되거나 잔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표명한다. 이러한 현상은 전시의 제목처럼 죽은 자의 망령이 소멸하지 않고 반복해서 돌아오는 것으로 비유된다.

개인과 국가, 이데올로기가 인식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관하여 작업을 해온 신정균 작가가 <Dust, Wind & Fire>(2017)에서 암시하는 것은 일련의 위기와 사건들의 배후에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한계, 조작된 사건들의 진위에 대한 의심, 그리고 ‘어긋난 시간’이다. 작가는 사전에 계획하여 촬영한 푸티지들이 아닌, 그동안 수집하고 기록했던 자료들을 재구성하는 파운드 푸티지 필름 방식으로 새로운 서사를 도출했다. 픽션과 논픽션의 모호한 뒤섞임,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애매한 경계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와 다름없다. <Dust, Wind & Fire>(2017)의 영상 언어가 은유하는 것은 평행한 시간의 축 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일 것이다. 영상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흐른다. “어차피 과거에 이미 일어났거나 / 미래에 일어날 일이 모두 지금 여기에 있는 거라면 / 평행하지 않은 단면으로 시간을 자르면 어때?”

비동시성은 불균등한 시간의 겹이며, 현재를 만들어낸 과거와 그 사이를 연결하는 시간의 축은 결코 단절될 수 없다. 이 시간의 축을 단절시킬 수 없다면,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망령을 막을 수 있는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모더니즘적 잔재는 필연적인 것인가? 이재욱 작가는 <Red Line>(2018)과 <Cord-on>(2019)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축과 또 다른 장소의 축이 ‘붉은 선’이라는 어떤 상징으로서 교차함을 은유한다. 제주 4.3 사건 당시 강경진압시기인 1948년 10월 17일에 군은 ’10월 20일 이후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에 처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고, 소개령(疎開令)을 내려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해변 마을로 강제 이주하도록 했다. 이재욱 작가가 표현한 붉은 선 ‘red line’은 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다. 지배 권력에 의한 강제 진압과 폭력을 의미했던 이 붉은 선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광화문에 재현된다. 광화문 시위에서 공권력-경찰-에 의해 세워진 차벽으로 치환된 붉은 선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같은 모습으로 출현한 과거로부터의 망령과 다름없다.

이러한 단절되지 않은 시간의 축, 불균등한 시간의 겹,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인간의 주체적 사고와 사회적 관념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가? ‘태극기 집회’라는 최근의 민족주의 현상을 다룬 안건형 작가의 <한국인을 관두는 법>(2018)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어온 한국식 기회주의의 역사를 서술한다. 작가는 ‘특정 집단이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면, 예외적이라고 간주되는 그 집단 내의 사건은 사실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것이고, 따라서 그 집단 전체의 지표가 된다’고 언급한다. 영상 속에서는 ‘출세의 소리’가 들린다. 처세의 속물과 위선자들과 함께 기회주의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반지성이나 분노와 폭력이 유토피아의 은총이라고 말한다. 정권 교체와 더불어 교체되는 우상-동상들이 등장하고,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등장하는 권력 친화적 무리들을 소개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 구조가 바뀐 것 같지만 실상 매번 등장하는 새로운 우상은 현재의 탈을 쓴 과거의 망령들일 뿐이다. 이러한 콘텍스트는 옥정호 작가의 <국민교육헌장>(2018)에서도 읽을 수 있다. 대나무 숲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부르짖는 한 남자를 통해, 작가는 개인의 인식이 주체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에서 그 심연에 작동하는 과거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에 무력함과 체념을 느끼고 있음을 암시한다.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정한 이후 새마을 운동과 함께 20여 년간 보급되었던 국민교육헌장은 1994년경 사실상 폐기되었지만, 그 시절 전체주의의 망령이 끊임없이 출현하는 이 사회에서 아직도 우리는 과거의 망령을 떨쳐낼 수 없다. 작가는 어린 시절 국민교육헌장 암기 시험의 경험으로부터, 체화된 관념과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순간을 겪는 자신을 깨닫는다. 과거의 국가 권력과 교육 시스템은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주체적 사고를 거두어가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주체적 자아와 비주체적 자아 사이의 간극에서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체념과 무력함에 저항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교육헌장’을 끝까지 다 외워야만 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더 이상 실존하지 않더라도, 그 사실이 그들과 관계가 끝났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1993)’.

<망령들의 왕국>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술작품을 경유하는 메타인지적(metacognitive) 장치를 통해 사회 문화적 콘텍스트를 이해할 때 결코 낙관적이지 않은 상태, 현재의 무력함을 어떻게 통감하고 이 모든 수사적 기호들과 시청각 언어들을 어떻게 융화하여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이미지는 시각 경험 안에서 사회문화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은유와 코드, 기호와 암시, 재현체계, 스타일로서 이미지와 서사의 관계를 끌어내고, 그 서사의 근간이 되는 사회와 문화의 상을 반영함으로써 우리(관객)에게 합의된 이해를 도출하도록 한다. <망령들의 왕국>은 전시를 구성하는 각각의 작품이 가진 서사를 제시하면서, 현재의 현상들을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다시 평행한 시간의 축 위에 올려놓고, 이 불우한 시간의 평행 축을 결코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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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형, <한국인을 관두는 법>, 2채널 비디오, 1시간 2분 39초/48분 12초, 2018

신정균, <Dust, wind & fire>, 싱글채널비디오, 10분 24초, 2017

옥정호, <국민교육헌장>, 2채널 비디오, 3분 32초, 2018

이재욱, <Red line #7>, Archival pigment print, 112x149cm, 2018
이재욱, <CORD-ON #2>, Archival pigment print, 110x147cm, 2019

유리가 많은 집

<유리가 많은 집> | 염철호 개인전

전시기간
2020.10.10(토) ~ 11.8(일)

관람시간
11:00 ~ 18:00(월요일 휴관)

저녁마루_아크릴, 특수 조명_가변크기_2020

전시 소개

‘집’을 물리적 체현으로서의 공간이 아닌, 개인의 감정이나 사유에 관여하는 일종의 사건, 인물, 개별적 역사를 내포하는 하나의 사회적 구성체계로 간주하고 작가의 서사에 다가가 보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집’에 관여하는 개인의 서사와 그것을 복기하는 ‘기억’이다. 물론, 개인적 차원의 기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실은, 개인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 간에 이루어진 소통과 그들의 관계성이 구축한 문맥 위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의 기억과 경험은 개인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사회적 틀이 작용하고, ‘집’-공간을 복기하는 기억이란 공간을 구성하는 인물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관계들을 통해 발현된다. 염철호 작가의 첫 개인전 <유리가 많은 집>은 ‘집’이라는 어떤 작은 단위의 사회적 공간이 구축해 온 시공간의 촘촘한 망을 비집고 들어가, ‘집’을 구성하는 인물들과 그 공간에 내재한 상징적 관계들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살던 집은 동네에서 ‘유리가 많은 집’으로 불렸다. 집의 전면을 구성하는 건축 소재가 유리였기 때문에 골목 어귀에서도 쉬이 눈에 들어오고, 밖에서도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전시는 작가의 ‘집’을 기억 속에서 복기하고 재현한다. 이것은 복원(restoration, 復原) 또는 재연(reenactment, 再演)과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재현(representation, 再現)이다. 일체의 부속물이 집합적으로 재현된 집은 그 어떤 증거도 되지 못할 작가의 집이다. 다만, 이 집을 짓기 위하여 작가는 ‘어머니’로 호명되는 타자와 ‘집’의 과거에 대면하고, 집이라는 공간에 얽힌 복잡한 타자들의 ‘관계’에 대면하기로 한다. 집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로 간주되었던 유리는 다시 작가 개인의 사유체계로 돌아와 ‘불안정하고 깨지기 쉬운’이라는 문구로 치환되었다. 이 은유의 방식에는 개인의 서사와 관념적 단어가 상응하여 대치된다. 작가는 집(으로 대치되는 공간)과 어머니(로 대치되는 타자/인물), 나(로 대치되는 주체),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로 대치되는 집과 인물이 구축한 상징적 관계들)이 사유체계와 재현체계에서 불안정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그것이 오랜 시간 스스로를 잠식하는 근원적 문제였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작가는 집과 집의 구성원들이 구축한 관계들의 위계 안에서 느끼는 무력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이 사유체계와 재현체계의 상징적 관계들을 재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하여, 집 밖의 외부 세계에서 구축된 ‘작가’로 호명되는 또 다른 주체를 개입시키기로 한다. 그렇게 작가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유리가 많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유리가 많은 집>은 빛의 얽힘에 의한 감춤과 드러냄, 시선의 충돌, 그리고 전복된 건축적 구조를 드러내면서 작가의 의도를 에둘러 감 없이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관념이 시각적으로 재현될 때, 이미지의 역설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역설은 수천 개의 실 사이로 관통하는 빛이 전시장 벽에 흐릿한 음영의 잔상을 남기는 작품 <실눈>(2020)이나, 감추고 싶은 집의 풍경이 이미지로서 오히려 드러난 작품 <부조화>(2020)에서 시각적 언어로 표현된다. 시선의 강제성을 전제로 할 때, 작가는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떤 합의점을 생각해야 했다’고 상기한다. 이는 작가가 감추어 왔던 유리가 많은 집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거나 혹은, ‘유리가 많은 집’이라는 문구로 귀결되는 서사, 어머니의 저장 강박증과 가족들 간의 충돌, 소통의 부재에 대한 작가의 양가적 감정에서 촉발된다.

‘유리가 많은 집’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감정은 기억 속에서 복기한 집의 풍경이나 어떤 특정한 장면을 재현할 때에도 작용한다. <하얀 자리>(2020)가 재현하는 것은 유리가 많은 집의 한 단편,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어떤 장면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빛이나 소재가 주는 시각적 효과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그 당시의 감정이나 분위기는 최대한 절제하여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하얀 커튼 뒤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아크릴 문은 기억 속에서 복기한 집의 흔적 또는 파편화된 집의 한 조각이면서 동시에, <유리가 많은 집> 전시의 선행 단계에서 제작된 작품-<Inner Circle Image>(신유현 염철호 2인전, 2019.10.16.~10.30, 아트랩반)에서 제작했던 작품으로, 이 전시에서 염철호 작가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집의 일부를 오브제로서 복원하고, 빛의 가감을 이용한 장치를 설치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기억 장치에서 생성된 희미한 이미지를 구현했다-이다. <저녁마루>(2020)에는 ‘유리가 많은 집’에 대한 더욱 증폭된 애증의 감정이 작용한다. 이 작품은 마루를 천장에 배치하여 건축적 상하 구조가 전복된 형태로서 공간 내부에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축적 구조의 전복이나 스며드는 빛과 같은 장치를 통해 작가는 <유리가 많은 집>에서 집과 집 위에 세워진 상징적 관계들에 대한 불안, 두려움, 걱정과 같은 감정들과, 감추고 싶은 개인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서사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역설적 감정을 드러내고, 복합적인 사유체계와 재현체계를 통해 어딘가 불안정하고 예민한 시각적 요소들, 이미지들을 생성해낸다.

푸코식의 사유에서 공간은 개인의 움직임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권력의 장치라고 했던가. 그러나 개인의 욕망과 서사가 투영된 공간은 기억장치를 통해 재구축되고, 스스로 권력의 작동과 어긋나면서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관계망을 구성한다. 공간을 사유한다는 것은 물리적 체현을 넘어 불안정하게 증식하는 공간의 상징적 관계들에 대한 사유를 함의한다. 작가는 이 전시를 준비함에 앞서 ‘궁극적인 목적은 집을 짓는 것’이라고 꽤 간결한 한마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예술의 언어를 빌어 이 공간을 사유하는 작가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단순히 ‘유리가 많은 집’을 다시 짓는 것이 아닌, 집과 그 위에 구축된 관계들이 치유와 회복의 공간으로 회귀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글/ 임보람

하얀자리_커튼, 아크릴, 조명_가변크기_2020
실눈_실, 철망, 조명_가변크기_2020
부조화 1_제스모나이트, UV프린트_57.5×40.5cm_2020
부조화 2_제스모나이트, UV프린트_57.5×40.5cm_2020

작가 소개

설치 작가 염철호는 ‘시간’, ‘흔적’, ‘장소’, ‘사람’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여, 공간의 흔적을 탐구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이번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전시 <유리가 많은 집>이 첫 개인전이며, 주요 단체전으로 <Inner Circle Image>(2019, 아트랩반), <성북도큐멘타V: [공동의 기억: 새석관시장]>(2019, 성북예술창작센터), <한 치의 단단한 땅>(2015, 아마도 예술공간) 등에 참여하였다.

피칭앤매칭 2020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의 연례 프로그램인 피칭앤매칭 전시기획 워크샵이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피칭앤매칭 프로그램은 신진기획자들을 대상으로 전시기획의 아이디어를 구현하여 실제로 전시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지원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합니다. 전문가 멘토링과 강연을 통해 아이디어를 기획안으로 구성하여 효과적으로 피칭-제시/발표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워크샵 이후 전시 제작 과정을 통해 작가와 기획자 간의 매칭, 주제와 텍스트의 매칭, 작품과 전시공간의 매칭 등 다중적 매칭을 실험하고 실습할 수 있도록 함께 합니다.

올해의 피칭앤매칭 프로그램은 예년과 달리 참가자들이 워크샵을 통해 기획을 빌드업하고 결과물 발표로서 2021년 상반기(3~5월 중 3~4주)에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워크샵 일정

1회차 / 8월 1일(토) 오후 2시
2회차 / 8월 8일(토) 오후 2시
3회차 / 8월 15일(토) 오후2시
4회차 / 8월 22일(토) 오후2시
5회차 / 8월 29일(토) 오후2시
6회차 / 9월 5일(토) 오후2시

* 강사 소개 | 우현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에서 19세기 영국 디자인 교육으로 예술전문사(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아트센터 나비 연구원과 월간지 『공간』의 미술기자를 거쳐 한국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며,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하였다. <시장의 재발견>(2012, 서울디자인재단), 구동희 개인전 <밤도둑>(2014, 시청각)을 기획하였고, 클레어 비숍의 『래디컬 뮤지엄』(2016, 현실문화)을 공동번역하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예술사 및 예술전문사 과정에서 「전시기획」 수업을 진행하였다.